[1회] 인자의 머리 둘 곳1
[2회] 인자의 머리 둘 곳2
[3회] 인자의 머리 둘 곳3
[4회] 인자의 머리 둘 곳4
[5회] 인자의 머리 둘 곳5
[6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7회] 아담에게서 시작된 노예
[8회] 자유를...
[9회] 자유는 진리에서
[10회] 종교는 경전에
[11회] 하나님의 교제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

[12회]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끊어진 발단

[13회] 사단은 사람보다 지혜롭다
[14회] 마침내 죽다
[15회] 말씀으로 창조한 세상
[16회] 우주의 법질서를
설명한 성경 말씀

[17회] 과학은 성경을
부인할 수 없다

[18회] 지동설
[19회] 창조의 목적
[20회] 지구의 형성 과정
[21회] 말씀은 역사의 원동력이다
[22회] 성육신
[23회] 말씀을 성취키 위한 육신
[24회] 신비주의
[25회] 성령은 말씀에
[26회] 성경은 역사를 통과한다
[27회] 성경은 A에서 B로
[28회] 성경은 산 자의 양식
[29회] 성경은 사실이다
[30회] 우주의 질서
[31회] 마음의 질서
[32회]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

[33회] 형벌 속에도 약속이 있었다
[34회] 선민의 죄를 치시고
몽둥이를 꺾으심

[35회] 이스라엘과 이방의 관계
[36회] 회복의 진상
[37회] 마른 뼈들의 운동
[38회] 마른 뼈들의 회복
[39회] 세계적 법적 지위의 회복
[40회] 국토와 경제 회복
[41회] 세계의 보고
[42회] 신앙의 회복
[43회] 종말
[44회]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45회] 후 3년 반, 이방의 멸망
[46회] 믿음, 구원, 은혜란?
[47회] 두 죄수
[48회] 최종회 은혜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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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의 말씀
  " 인자의 머리 둘 곳 1 "
[기독교 복음 침례회] 권신찬 목사님의 은혜의 말씀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태복음 8:18-20)

신앙이란 인간의 결심으로 성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러한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대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계시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 계시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계시는 인간의 결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결심에 의해서 계시를 받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일반 다른 종교와 혼동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개인의 결심만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의를 다해서 고행을 한다 해서 구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결심이나 고행 같은 것은 참된 기독교 신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종교적인 본성이 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분출구를 찾아서 본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이성에 맞는 종교를 찾아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본성을 잊어 버리고, 종교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무종교 주의자다.

종교란 쓸데없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 의지로써 자기를 지배하면서 살면 된다. 그리고 큰 죄만 범하지 않고 세상을 요령있게 살아 나가면 되지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면서, 종교를 나약한 자의 지팡이처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 자신이 종교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종교'라고 하는 종교인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독교란 독특한 진리를 보았을 때에 곧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종교성의 결과입니다.

종교성과 계시적 진리가 혼잡되었을 때 하나의 ‘계시적 종교'가 성립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루고자 하신 진리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빌었으나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단의 뜻에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질된 기독교 속에 사단은 보금자리를 틀어 놓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상 숭배적인 반기독교를 꾸며서 기독교를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것 같이 보이는 기독교를 만들어 놓고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종교적인 열의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그것은 대단한 결심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에는 그의 모든 희생이 각오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 말씀은 분명히 그 서기관의 결심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 답변에 대한 해석을 인간의 종교성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뜻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서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대개 이런 뜻이 됩니다.
“나를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 없는 천사와 같이 하늘을 지붕삼고 다니는 신세인데, 네가 따라올 수 있겠느냐, 하잘것없는 여우도 유숙할 수 있는 토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만큼 고생스러운 일을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대부분의 성경 해석자들의 견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란 인간의 상식이나 선입관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먼 계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역사를 변혁하는 산 힘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말씀을 접촉할 때에는, 종교적인 상식이나 선입관을 떠나서 계시되는 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